• 롱샹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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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축의 아버지, 르꼬르뷔제가 말년에 그의 혼을 불어 넣어 완성한 건축물. 건물 전체를 휘감는 압도적인 아우라와 기하학적인 형태, 자연광만을 이용한 성당 내부의 신성한 분위기를 만나게 되면 이 건축물이 왜 20세기 최고 건축물중 하나인지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상세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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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건축의 아버지 르꼬르뷔제(1887~1965)’

롱샹성당 


오직 자연만이 인간에게 영감을 준다. 자연만이 진실이다. – 르꼬르뷔제

롱샹성당은 르꼬르뷔제의 말년에 혼을 불어 넣어 만든 역작이다.

자연과 건축, 극적 빛의 조화, 터져 나오는 탄성 아~

이 건물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그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그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건축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깊고 크면 이런 건축물이 나올까?

롱샹성당은 르코르뷔제가 1950~1954년에 프랑스와 스위스 독일 접경지대에 세운 순례교회당이다
건물 전체가 곡선과 곡면으로 이루어진 조소적 작품으로서, 로마네스트 풍의 두꺼운 벽을 속이 빈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고 갑각(甲殼)
처럼 곡면지붕을 이었다. 조형적으로나 구조적으로 1938년 무렵에 일어난 그의 작품변화를 가장 현저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전 세계 건축가에게 큰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이 신비로운 성당은 높은 곳(그지역에서 제일 높은 낮은산)에 자리 잡고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곳은 기도의 장소로 사용되어 왔다. 그에 따라 르 꼬르뷔지에는 깊은 물아와 명상의 배를 목표로 삼았다. ‘네 개의 지평을 출발점으로 취함으로써 건물과 주위 경관을 세심하게 연관시켰다. 대규모 순례자를 위한 옥의 제단은 이 장소와 그 환경사이의 관계를 상상적으로 암시한다
 
순례자는 전통적인 성당에서처럼 인상적인 입구가 아니라 크게 부풀어 오른 지붕과 유명한 남쪽 벽체가 만나는 날카로운 모서리 부분에서 받아들여진다. 스미드가 지적했듯이 화려하면서 괴팍하다그럼에도 이성당은 중심과 통로를 풍부한 상상력으로 성공적으로 종합한 것으로서 성 소피아 성당에 견줄 만하다.

에워싸는벽체와 움직이는벽체를 통합함과 아울러 건축 형태의 소재로 취한 과거와 현재의 다양햔 이미지들을 통합하고 있다.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 수천년 역사가 울려펴지고 있는 이 건물은 양극단 사이에 성공적으로 사적인 가교를 놓은 위대한 예술작품이다” “20세기 최상의 매너리즘 건축” (P.F.Smith, 1979)이다. 롱상셩당의 강력한 은유는 노아의 방주 이미지이다. 노아의 방주에서 성궤에 이르는 이미지들에는 구원이라는 신학적 함의가 함께 하고 있다. 두번째 은유는 첫 번째와 관련이 있다. 배의 이미지로 이는 교회의 이미지로서 모두 그 안에 담긴 것을 구원하는 힘을 암시한다. 또 다른 은유는 천막이미지이다. 이는 방문자에게 자신이 이지상의 순례자라는 것, 곧 영구적으로 정착할 곳 없이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손님일 뿐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뉴욕의 롱아일랜드 해안에서 발견한 게등딱지에서 영감을 받아 지붕을 설계한 롱샹성당!
인공미를 최대한 줄이고 주변 자연환경과 최대한 조화롭게, 그리고 실용성도 살리는 동시에 성당 고유의 성스러움도 함께 표현한 건축물 롱샹성당!

르꼬르뷔제는 누구인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세계적인 건축양식으로 발전한 인터네셔널은 몇몇의 리더 건축가들이 중심적인 활동을 하였다. 그 가운데 르 꼬르뷔제는 프랑스계인 시계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나 입체파의 화가인 로스나 가르니에로부터 영향을 받은 천재적인 예술가이자 이론가였다. 꼬르뷔제는 보통 꼬르뷔로 불렸다
꼬르뷔제는 처음에는 미술 공예 운동 스타일로 설계했지만, 1917년 파리에 정착하면서 하얀 색깔의 모던 무브먼트의 거장이 될 조짐을 보였다. 한때 그는 화가 아메데 오장팡, 시인 폴 데르메와 함께 현대미학을 전문적으로 다룬 잡지 에스쁘리 누보를 발간한다. 이 잡지에서 꼬르뷔제는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그는 이 잡지에 발표한 많은 사상들을 건축을 향하여를 출간하여 다시 정리했다. 이 책에서 그는 그리스 신전, 고직 성당, 비행기, 자동차, 여갱선을 새로운 건축과 연계시켰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후. 그의 작품은 극적으로 변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그의 작품의 특징이었던 빛과 흰색이 사라졌다. 중후한 콘크리트와 조각 같은 형태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는 르 꼬르뷔제가 정신세계로 끊임없이 몰입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그 후 그는 순례자들을 위한 시적인 성당인 롱샹의 노트르담 뒤 성당, 에뵈에 있는 도미니쿠스 수도회 수도사들을 위한 생트 마리 드라 뚜레뜨 수도원을 차례로 설계했다. 이 수도원들은 적은 자본으로 지은 것이지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온몸으로 평온함이 느껴져 온다.

말년엔 그가 인도 찬디가르 신도시에 건축된 대법원, 정부청사, 국회의사당은 걸작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다 그가 설계한 도시건축의 전체는 건축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가 마지막 영정으로 남긴 건축 드로잉응 위대한 천재는 스스로 만들어간다라는 작가정신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르 꼬르뷔제의 건축작품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숫적으로 많을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건축작품은 20세기의 건축을 대표하여 건축양식을 증명해주는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인용 : http://yj651215.blog.me/140127809319

찾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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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샹성당을 찾아가는 시작은 바젤에서부터이다.
바젤(Basel)에서 뮐루즈(Mulhouse)를 거쳐 벨포트(Belfort)로 이동하다.
벨포트(Belfort)에서 롱샹(Ronchamp)으로 가는 마지막 기차를 갈아탄다.
*롱샹까지는 여러번 기차를 갈아타는 수고가 필요하다.
롱샹에서 벨포트까지 드나드는 기차가 하루에 손에 꼽히므로 롱샹에 갈 계획을 세울때는 기차시간을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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