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현대미술관 여행 2011 6/26-7/12 - 020
글쓴이 : 큰사과나무    작성일 : 2012-07-24    조회수 : 9165 첨부파일 : VFREVF8xMzMg.jpg
유럽 현대미술관 여행 2011 6/26-7/12 - 020

 
피렌체 S.M.N. 중앙역에서 가까운 호텔의 한쪽에 놓았던 가방을 방으로 옮기고 저녁을 먹고 피렌체 야경 투어를 하다.

시뇨리아 광장에 멋진 몸짱 남자가 서있었다.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비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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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다운 근육 몸매 조각의 달인인 미켈란젤로의 작품답다.

다비드상의 원본은 아카데미 미술관에 있고 광장에 서 있는것은 복제품이란다.

1501년 50년이나 방치돼 있던, 결이 좋지않아 조각하기 어려운 대리석을 3년만에 완성을 했을때

어떻게 이렇게 멋진 조각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미켈란젤로 왈

"대리석 속에 다비드상이 들어 있었다. 다비드상 이외의 불필요한 부분을 망치와 정으로 덜어 냈을 뿐이다." 라고 말했단다.

똑같은 재료라도 어떤이의 손길을 받느냐에 따라 걸작이 되기도 하고 방치된 폐자재가 되기도 한다.

우리 각자는 이미 다비드가 들어 있어 다비드를 깨워내는 것은 어떤 교육을 받느냐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질수 있다.

다비드상을 피렌체 시민에 선 보이던 날 피렌체 시민들은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다.

그런데 피렌체 시장이 다비드상의 코가 너무 높다고 지적하자 미켈란젤로가 손에 모래를 쥐고 망치와 정으로

코를 다듬는 척하며 모래를 흘리자 시장이 그것을 보고 "코를 낮추니 좀 낫군." 하고 말했단다. ㅎ

메디치 가문 300년 역사의 기틀을 다진 국부의 칭호를 얻은 코시모 1세의 청동 기마상도 서 있다.

군복을 입고 말을 타고 있는 씩씩한 모습인데 정작 당사자는 겁이 많아 전쟁에 참석한 적은 없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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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튠 분수는 1575년 토스카나 해군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분수인데 넵튠상이 코지모 1세의

얼굴을 닮았다는 가이드님의 설명.

그래서 그런지 공모전에서 거장들을 물리치고 조금 실력이 떨어지는 작가의 작품이 채택이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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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 성당은1296년 부터 시작하여 완성하기까지 약 140년이 걸렸단다.

규모나 화려함이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카메라의 프레임에 성당 전체가 나오게 찍기도 어려울 듯.

세례당에서 단테가 세례를 받았단다.

3개의 청동문중 동쪽문은 문전체가 황금문으로 번쩍 번쩍하다.

구약 성서의 10개의 이야기가 조각되어 있는데 미켈란젤로가 "이문은 천국의 문앞에서 있는것이 옳다"고

말한뒤에 '천국의 문'이라고 불려진단다.

로렌초 기베르티가 1425-1452년까지 28년, 강산이 3번이나 바뀔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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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문] 위 부분에 세례자 요한과 예수와 천사의 모습이 있다.



두오모 성당은 피렌체 공화국의 종교의 중심지로 화이트 핑크 그린의 대리석으로 기하학 무늬가 들어 있다.

하얀색은 예수님, 분홍색은 신성한 피, 녹색은 죽음을 상징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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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 성당과 쿠폴라 모습이 보인다. 원래 이름 Basilic Di Santa Maria Del Flore는 꽃의 성모 사원이란 뜻이라고.



성당 꼭대기의 둥그스럼한 돔을 쿠폴라라고 하는데 1420년 착공을 하여 16년만에 완성을 하였다.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했는데 로마의 판테온 신전의 돔의 영향을 받아 만들었다고.

붉은 타일의 쿠폴라는 사다리 없이 만든 가장 큰 건물이란다.

쿠폴라 안쪽에 추카리의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는데 밑에서 보면 천국인데, 계단을 오르면서 보면

지옥의 모습으로 보인다니....신기하다.

464개의 계단을 오르면 피렌체 시내가 한눈에 보인단다.

일본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주인공이 영화에서 올랐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두오모 성당에서 설명을 들으며 사진을 찍는사이 밤은 더욱 깊어가고 가이드에겐 12시간 이상 근무하면 라이센스 운운의 규정은 없나?

우리도 힘들지만 가냘픈 사람이 늦게까지 일하니 안쓰럽다.

그래도 피렌체 야경 투어가 의미가 있으니 견딜만 하다.

그 옛날 미켈란젤로와 단테가 뛰어 놀았던 골목을 우리가 같이 밟고 있는것이다.

유명조각가 로뎅도 단테의 [신곡]을 붙들고 살다시피해서 지옥문을 조각할때도 단테를 새겨 넣을 정도였다니.....

단테와 단테의 신곡의 영향력이 대단함을 알 수 있다.

단테는 10살때 베아트리체를 만나 한눈에 반하고 9년뒤에 산책을 하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누었을 뿐인데

그의 문학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베에트리체에 대한 사랑은 시로, 불후의 명작 신곡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실제론 제대로 말한마디 건네지도 못한 쑥맥이었다고.

그시대는 일찍 결혼하던 때여서 14살에 집안에서 어른들이 골라준 배우자와 결혼을 했다.

단테의 생가인곳에서 설명을 듣다가 가이드가 갑자기 바닥에 물을 붓는다.

바닥이 물에 젖으면서 또렷이 살아나는 단테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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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으로 돌아나오는 길목에 거리의 화가가 길바닥에 파스텔로 '라파엘의 성모자상'을 그리고 있었다.



다음은 바티칸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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