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현대미술관 여행 2011 6/26-7/12 - 009
글쓴이 : 큰사과나무    작성일 : 2012-07-24    조회수 : 21575 첨부파일 : VFREVF80.jpg
유럽 현대미술관 여행 2011 6/26-7/12 - 009

로댕갤러리로 이동하며 가이드의 재미난 수다.

프랑스는 두종류의 사람으로 나누어 진단다.

7월에 휴가를 가는사람과 8월에 휴가를 가는사람으로.

7,8월엔 정규방송도 휴가를 하고 뉴스 메인앵커도 휴가를 가서 기회는 이때다 하고 햇병아리 앵커들이 정말 열심히 한다고.

다른 나라들의 1년의 시작이 1월이라면 프랑스는 1년의 시작이 9월이란다.



1880년 프랑스 정부는 새로 건립하기로 한 장식 미술관의 출입문을 로뎅에게 의뢰하였다.

평소 단테의 신곡을 즐겨 읽었던 로댕은 신곡의 지옥편에서 소재를 얻어 지옥문을 제작하기로 하고

중앙 상부의 난간에 설치할 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구상하였다.

생각하는 사람은 지상을 내려다보면서 명상에 잠겨 있는 단테를 상징하였던 상으로 원래는 '시인'이라는

제목을 붙일 예정이었으나 주물을 만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불러 그뒤론 그대로 통용 되었단다.

1888년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의 문과는 독립된 작품으로서 크게 만들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보통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볼때, 깊은 생각에 잠긴것으로 흔히 생각하는데 이것은 단테가 저술한 [신곡]의

[지옥편]을 소재로 삼아 지옥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뇌하는 한 사람을 작품화한 것 이란다.

로댕은 20년 동안이나 [지옥의 문] 구상을 붙들고 고민하다가 장식미술관 신축 계획이 취소되자

그 사이에 받았던 돈을 돌려주고 작업에서 손을 뗀다.

격국 [지옥의문 ] 미완성 석고 모형으로 남아 있다가 1938년 로댕이 죽은 뒤에야 우여곡절 끝에 주조되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단다.


너무나 낯이 익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청동주물은 하나 만드는데 돈이 많이 든단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여기저기에 복사본이 많은데 21번째는 한국에 있단다.

물론 프랑스에서 만들어서 가져오는 것이라고 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이전에 워낙 많이 만들어져서 예외이고 다른 청동조각은 12개의 카피만 진품으로 인정한단다.

자 여기서 퀴~~즈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은 어느쪽 손으로 턱을 괴고 있을까요?





로뎅갤러리 정원에서 칼레의 시민들이란 작품을 보았는데 설명을 들으니 감동이다.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서 다른 작품을 보는데 실내라서 그런지 답답한 느낌이 든다.

'아! 다른건 안봐도 돼 칼레의 시민만으로 족해'

정원으로 다시 나와 칼레의 시민들을 정면,뒷면 돌아가며 보고 또 보았다.

1347년 도버해협 양쪽의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때의 일이란다.

영국의 공격을 막던 프랑스 북부도시 '칼레'는 식량 보급선이 끊긴채 11개월이나 버티다가 백기를 들었다고.

도시전체가 불타고 칼레의 시민이 도살되는 운명을 면하기 위해 영국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였다.

이에 영국왕은 칼레시민들의 생명은 보장하겠지만 그동안의 어리석은 반항에 대해 이 도시에서 가장 명망이 높은

시민 대표를 골라 교수형에 사용될 밧줄을 목에 걸고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로 영국군 진영으로 와서 도시의 열쇠를

바치면 목을 매 처형하겠다고 했단다.

그때 용감하게 나선 6명은 모두 도시의 핵심인물이며 부유한 귀족이었다.

칼레에서 가장 부자인 생 피에르가 가장 먼저 자원을 하였다.

"자 칼레의 시민들이여..나오라.. 용기를 가지고..."

그러자 시장이 나서고 법률가, 귀족계급,상인, 상인의 아들이 나서서 나온사람이 일곱명이 되었다.

제비를 뽑자는 말도 있었지만 생피에르는 "내일 아침 장터에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고 제의했고 이에 모두 동의했다네요.

고통의 밤이 지나고 이튿날 이른 아침 여섯명이 모였는데 생피에르가 오지 않았다.

죽음을 자원한 사람들의 용기가 약해지지 않도록 명예를 위해 자결을 했단다.

6명이 처형되려던 마지막 순간,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듣고 용감한 시민 6명을 살려주었단다.

그로부터 550년이 지난 1895년 칼레시는 이들의 용기와 헌신을 기리기 위해 조각상을 제작하기로 하고 로댕에게 의뢰하여

만든 작품이 바로 '칼레의 시민들'이라고.

이사건에서 나온 말이 Nobless Oblige (노블레스 오블리쥬) 라고 한다.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윤리적 의무를 뜻한다고.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다니....

죽음이 두렵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려고 하는게 인지상정인데..

군대를 가면 사람의 아들이고 군대를 안가면 신의 아들이라고 하는 한국에서 떠도는 말.

부동산 투기, 자녀 취업특혜, 논문조작등등 으로 얼룩졌던 공직자 임명 인사 청문회가 떠오른다.

국회의원들 금뱃지와 상위 공직자들이 달고 다니는 사랑의 열매 대신 칼레의 시민들 뱃지를 달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님이 파리시내를 설명하던중에 한국문화원자리라고 가리키면서 세계 11번째 경제대국이

아직도 한국문화원이 아파트 반지하에 있다고 하면서 볼 때마다 속상하다고 말씀하신다.

외국에 나가 있으면 다 애국자가 된다더니....

저녁으로 한식을 먹었다.

식당이름이 '다와'여서 가을바람님이 가와 나와 다와라고 말씀하신다.

가와 사무실과 다와 식당이 체인점?

홍화줄기볶음은 한국에서도 못 먹어본 반찬이다.



저녁을 먹고나서 에펠탑에서 사진을 찍었다.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게 루브르, 세느강 개선문,, 들이 있겠지만 에펠탑을 빼놓을 수 없겠다.

프랑스 혁명 100돌 기념 파리 만국박람회때 만들어진 것 이란다.

참고로 파리 만국 박람회때 (1889년) 우리 나라도 참가를 했었다고 한다.

피라미드보다 2배나 높은 324M, 무게는 7,300톤의 철강이 사용되었단다.

처음엔 파리의 경치를 해진다는 심한 반대가 있었는데 그중에 제일 방방 뛴 사람이 모파상이란다.

에펠탑이 세워지면 파리를 떠나겠다고.

그러나 막상 세워지니 인기가 좋아서 완공 1년뒤엔 흑자가 될 정도로 전망대에서 바라본 파리 경치가 아주 좋았고

TV안테나 송신탑으로도 쓰인단다.

그런데 모파상은 파리를 떠났느냐고?

떠나기는 커녕 매일 에펠탑 2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대나 뭐래나...ㅎ




드디어 대망의 세느강 뱃놀이 시간이 돌아왔읍니다. 짠짜라~잔

유람선 회사중 제일 오래되었다는 밧도무슈회사 배를 탔다.

뱃놀이 시간은 1시간 15분정도.

화물선이 젤 많고 다리는 37개나 된다고.

1991년도에 영화로 나온 뽕네프의 연인들로 유명한 뽕네프다리도 그중에 하나.

영화찍을때 실제 뽕네프다리에서 찍을려고 교통 통제를 요청했다가 거절을 당해서 다른곳의 세트에서 촬영했다고.

세느강 바닥이 석회질이고 플랑크톤이 많아 물빛이 푸른색이라고 한다

배를 타고 가면서 루블박물관도 지나고 왕년의 영화배우 B.B의 젊은시절 얼굴의 CF도 보았다.

중저가 가방 메이커 Lancel의 모델이란다.

가로수로 우리귀에도 익숙한 마로니에도 보인다.

오르세 미술관도 지난다.

배안의 관광객들이 강가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드니 같이 흔들어준다.

데이트하는 한커플이 키스하는걸 본후부터 데이트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녀를 보면 "키스해 키스해" 합창을 하였다.

강가에 3명이 앉아 있는걸 보았는데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더니 그중의 한남자가 웃옷을 훌러덩 제끼니 같이 있던

여자도 따라서 웃도리를 훌러덩 제끼니 속옷이 드러나 우리도 웃고 그들도 웃었다.

유람선을 타고난후 버스로 이동하며 세느강변을 가이드님이 여기저기 설명을 해주신다.

간단한 불어도 함께.

해가 있을때의 인사는 봉쥬(르)

어두어졌을때의 인사는 봉수아

미안합니다는 빠동이란다.

우리나라에서 야리꾸리하게 쓰이는 마담은 귀족부인한테 쓰는 말이라고.

영어로 No에 해당하는 말은 농.

Yes에 해당하는 말은 위.

영영 이별을 의미하는 말은 아~듀.

See you later에 해당하는 말은 아흐브아란다.



봉수아 아흐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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